

푸에르토리코는 가장 큰 섬을 중심으로 엔틸리즈 제도의 일부분의 여러 섬나라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른 주요 섬들에는 모나, 비에케스, 큘리브라가 있습니다. 카리브해에 위치한 이 연방국가는 수백년간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이로인해 많은 외부인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문화를 만들어냈고 따라서, 푸에르토리코의 문화는 다중 문화가 어우러진 곳이 되었습니다.

여러 외부인들, 특히 카리브해에서 휴가를 즐기려는 미국인들에게 인기있는 휴양지로 자리매김하면서 이곳에는 많은 다양하고 고급스러운 숙박시설이 들어와 있습니다. 많은 유명한 국제적인 호텔 체인들이 이곳에 리조트를 가지고 있으며 품격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excellent.

수도인 산후안에는 홀리데이인, 카리브 힐튼, 산후안 매리어트 리조트 & 스텔라리스 카지노를 포함한 고급 호텔과 보다 푸에르토리코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작은 호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숙박시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대형호텔들은 레스토랑과 카지노, 헬스클럽, 수영장 시설을 완비한 리조트의 형태이며,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객을 위한 비교적 저렴한 숙박시설도 많이 있습니다. 산후안에는 많은 숙박시설이 있지만 호텔은 항상 사람들이 많으므로 미리 예약을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푸에르토리코가 매우 인기 있는 휴양지라는 것이 반증하듯 이곳의 날씨는 일년 대부분
좋은 날씨를 보입니다. 일년 내내 기온 차가 그리 크지 않으며 따라서 계절도 거의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푸에르토리코는 산이 많은 섬이어서 오지로 들어가면 해안가와는 다른 날씨를 경험하게 됩니다. 서쪽 해안의 언덕과 바다로 이어지는 산의 높은 중심부의 많은 비는 섬을 비옥하게 합니다. 남쪽 해안은 건조하며 거의 비를 구경할 수 없는 반면, 북쪽의 해안 쪽 평야지대는 비옥합니다.

기온은 연중 20도에서 30도 사이이며 산이나 밤에는 기온이 이 보다 떨어집니다. 이 섬은 또한 가뭄이나 허리케인과 같은 급격한 날씨 변화가 생기기도 합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부스가 이 땅을 밟기 전의 푸에르토리코 역사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오르토이로이드라고 알려진 토착민이 이 섬에 살았었다고 알려지며 현대에 발견된 가장 오랜 인간의 흔적은 BC2000년 경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여러 시대에 걸쳐 다양한 종족들이 살았으며 특히 이그네리, 카리브스, 타이노스 등은 큰 족적을 남겼으며 스페인인들이 이곳에 출현하기 전까지 이 곳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안틸리즈 제도로의 두번째 여행이었던 1493년에 이 섬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섬은 부유한 항구라는 의미의 푸에르토리코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스페인 정부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스페인 통치정부는 타이노스 원주민과 아프리카 노예를 데리고와 사역에 동원하였습니다. 식민지 사람들과 노예들로부터 퍼진 질병은 토착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스페인인과 그들의 노예들은 이 섬을 카리브해의 전략적으로 중요한 무역 의 근거지이자 주요 항구로 만들었습니다.

스페인의 관심이 본국 영토에 집중되자, 다른 유럽국가의 침략을 방어하고자 몇몇 요새들이 수년에 걸쳐 건설되었는데 라 포탈레자, 엘 카스틸로 산 펠리페 델 모로, 엘 카스텔로 델 산 크리스토발 요새 들이 그것입니다.

19세기로 넘어올 때까지 쿠바와 더불어 푸에르토리코는 중남미 아메리카에서 독립을 얻지 못하고 스페인의 치하에 남아있었습니다. 1897년에 자치정부가 권력을 키우면서 이곳에도 변화가 불어왔습니다. 푸에르토리코 입법을 무력화 시키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스페인 정부에 의해 통치자가

지명되었으나, 1898년 스페인과 미국의 전쟁이 발발하여 미국의 통치하에 들어감에 따라 독립을 향한 첫걸음을 디디게 되었고, 1917년 푸에르토리코인들에게 미국 시민권이 주어졌습니다. 1947년에는 푸에르토리코인들에게 자국 정부의 통치자를 뽑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으며, 이 시기부터 많은 푸에르토리코인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미국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푸에르토리코의 첫번째 헌법 초안은 1952년에 만들어졌으며 미국국가로서의 지위가 주어졌으나 완전한 독립은 얻지 못했습니다.





























